(단편실화) 우리 형은 언청이였다.


오래 전 어린이를 구하다 대신 숨진 한 포항공대생에
관한 이야기로 이 글은 그의 동생이 작성한 글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형을 처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어머니의 따뜻한 젖꼭지가 아니라 차갑고 아픈 주사바늘이었다. 형은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아야 했고 남들은 그리 쉽게 무는 어머니의 젖꼭지도 태어나고 몇날 며칠이나 지난 후에야 물 수 있었다.

형의 어렸을 때 별명은 방귀신이었다.

허구 헌 날 밖에도 안 나오고 방에서만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하기는 밖에 나와 봐야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이나 되기 일쑤였으니 나로서는 차라리 그런 형이 그저 집안에만 있어주는 게 고맙기도 했다.

나는 그런 형이 창피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형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비록 어렸을 때였으나 수술실로 형을 들여보내고 나서 수술실 밖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기도드리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잊혀 지지가 않는다.

형을 위해서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어머니를 보니 은근히 형에 대한 질투심이 들었다. 어머님이 그렇게 기도드리던 그 순간만큼은 저 안에서 수술 받고 있는 사람이 형이 아니라 나였으면 하고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니는 솔직히 나보다 형을 더 좋아했다.

가끔씩 자식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시는 어머니의 말씀 속에서 항상 형은 착하고 순한 아이였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장난꾸러기였다. "그네를 태우면 형은 즐겁게 잘 탔었는데 너는 울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다가 넘어지고 그랬지...

형은 나보다 한해 먼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수술 자국을 숨기기 위해 아침마다 어머니는 하얀 반창고를 형의 입술위에다가 붙여 주시고는 했다. 나 같으면 그 꼴을 하고서는 챙피해서 학교에 못 갈 텐데 형은 아무소리도 않고 매일 아침 등교 길에 올랐다. 형이 학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잘 몰랐지만 아마 고생께나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형에게는 말을 더듬는 버릇이 생기고 있었다.

나는 그런 형을 걱정해주기는커녕 말할 때마다 버벅거린다고 "버버리" 라고 놀리고 그랬다. 형이라는 말 대신 '버버리'라고 불렀고 내 딴에는 그 말이 참 재미있는 말로 생각되었다.

어머니가 있는 자리에서는 무서워서 감히 '버버리'란 말을 못 썼지만 형 하구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는 항상 '버버라', '버버라' 이렇게 부르곤 했다.

형은 공부를 잘했다. 항상 반에서 일등을 하였다.

비록 한 학년 차이가 나긴 했지만 형의 성적표는 나보다 항상 조금 더 잘 나오곤 했다. 어쩌면 그런 형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마음에서 더 그런 말을 쓰고 했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형이 어머니에게 무진장 매 맞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나는 그 당시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한참 만화와 오락에 빠져 있었는데 항상 용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매일 밤 어머니의 지갑에서 몇 백 원씩을 슬쩍 하고는 했었는데, 그러다 어느 날은 간 크게도 어머니의 지갑에서 오천 원이나 훔쳐서 (그 옛날 오천 원은 참 큰돈이었다) 텔레비젼 위의 덮개 밑에 숨겨 두었는데 그게 그만 다음날 아침에 발각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당연히 나를 의심했다. 어머니는 무서운 분이었다.

게다가 그 며칠 전부터 돈 문제로 고민하고 계시던 어머니였던 지라 두려운 마음에 나는 절대 그런 적이 없었다고 철저하게 잡아 땠다.

다음에 어머니는 형을 추궁했다. 형은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 줄 몰라 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염치없게도 형의 대답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그 위기를 빠져나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형은 어머니에게 잘못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믿었던 형이었기에 더욱 더 화가 나셨고 나는 죽도록 어머니에게 매 맞고 있던 형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형이 그렇게 매를 맞는 모습을 보니 철없던 내 마음에도 형에게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방을 나가버리고서 방한구석에 엎드려 있던 형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형은 숨조차 고르게 쉬지 못하고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그 후 얼마동안은 형에게 '버버리'라는 말도 안하고 고분고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동네에 젤로 쌈 잘하던 깡패 같은 녀석이 형을 괴롭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녀석은 형 하구 나이가 똑같았는데 질 나쁘기로 소문난 녀석이었다. 나는 형에게 빚진 것도 있던 만큼 형을 위해서 그 자식과 싸웠다.

싸우다가 보니 그 녀석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원래 애들 싸움은 먼저 코피 나는 쪽이 지는 것인지라 나는 기세등등하게 그 녀석을 몰아 부치기 시작했는데 형이 갑자기 나를 말리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 싸움이 재미있던 판에 형이 끼어들자 화가 버럭 났다. 하지만, 지은 게 있던 지라 아무 말 하지 않고 물러서고 말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후로 그 깡패 녀석과 형이 아주 친해지기 시작했다. 형은 사람을 아주 편하게 해주는 구석이 있었다. 사실 나는 형의 그런 면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 면 때문에 내가 어머니한테 귀여움을 더 못 받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형과 그 깡패 녀석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 녀석이 장롱 밑에서 담배 갑을 꺼내더니 형하고 나한테 권하는 것이었다.

그때 담배라는 걸 처음 피워 보았다. 형과 나는 콜록콜록 대며 피웠는데 그걸 본 그 깡패자식이 좋아라 웃던 기억이 난다.

형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세 번째 수술을 받았다. 그 후로는 입술위에 반창고 붙이는 짓은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말더듬는 버릇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다시 형에게 버버리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TV에서 ""언청이""란 말을 처음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얼마 후에 그 말이 바로 우리 형과 같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런 희귀한 단어를 알게 된 게 참 신기했다. 그리고, 며칠 후 형에게 버버리대신 언청이라는 말을 썼다.

그 말을 들은 형은 마치 오래전부터 그 말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더니 내 머리에 꿀밤을 먹이면서 "그 말을 이제 알았구나?" 하며 웃어주었다. 왠지 그런 형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형에게 다시는 언청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도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었나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다닐 적 어버이날이었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방안에서 소리 없이 울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편지 같은 걸 읽으시면서 울고 계셨다.

어머니는 잠시 후 그 편지를 어느 조금은 초라하게 생긴 핸드백 안에 넣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방을 나가신 후 몰래 들어가 그 핸드백을 열어 보았다. 그 안에는 조금 빛바랜 편지봉투부터 쓴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편지까지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지금 막 읽으셨던 듯 한 편지를 꺼냈다. 형이 쓴 편지였다.

형이 매해 어버이날마다 썼던 편지를 어머니는 그렇게 모아놓고 계셨던 것이었다.

편지내용을 읽어보고는 나는 왜 그토록 어머니가 형을 사랑하고 형에게 집착하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형처럼 태어났다면 나는 나를 그렇게 낳은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했을 텐데 형은 그 반대였다. 오히려 자기가 그렇게 태어남으로 해서 걱정하고 마음 아파하셨을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고 또 위로하고 있었다.

어느덧 한해가 또 지나고 형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다음해 나도 중학교에 올라갔는데 한집에서 살고 있음에도 형과 나는 다른 학교를 배정받았다. 형은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항상 1등을 했다. 나도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는데 항상 형보다는 조금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형이 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끔씩 형의 일기를 훔쳐보곤 했는데 형은 시인이었던 것 같다. 형이 지은 시는 이해하기가 참 쉬웠다.(이하 글누락 생략)



출처 : 카톡으로 받은 글(이병학)
편집 : 신나라 권오덕



Hisaishi Joe -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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